Search

달리기를 위한 변명

요약
나를 이겨라. 그렇잖으면 난 반댈세.
게시일
2023/03/24
태그
달리기
에세이
1 more property
2023.3.19. 동아마라톤 후 모인 런위드쥬디, RMM
난 운동과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제일 못하는 게 운동, 특히 구기종목이었고, 책읽는 걸 좋아했다. 운동하느니, 공부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구부정한 등에 굽은 어깨, 거북목으로 살아왔었다.
코로나가 바꾼 많은 것 중 하나는 달리기를 하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는 것이다. 어디선가 코로나 이후 달리기 인구가 2배 이상 늘었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중랑천만 나가봐도 그렇다.
노원구에는 N1RC라는 아주 힙한 러닝 크루가 있고(20-30대 중심. 가입도 까다로운 듯), 처음처런이라는 MZ 세대 러닝 크루도 있다. 해피러닝이라는 화달, 목달(각각 화요일 달리기, 목요일 달리기)을 하는(토달도 있는 듯)러닝 크루도 있다. 여긴 연령대가 다양하고 5번 이상 참석하면 러닝 크루로 인정받는다. 게다가 노원구에는 이제 10만명 이상이 구독하는 유튜브 채널 마라닉TV의 주인공 올레님이 있기도 하다. 마라닉은 “마라톤을 피크닉처럼”에서 따온 말이다. 노원구는 마피아(마라닉 구독자들을 중심으로 모인 러닝 크루)의 본산이라 해도 되겠다. 그 뿐인가. 20여년 이상 깨지지 않았던 여자 마라톤 한국 신기록 보유자 권은주 감독(팬들은 감동님이라고 부름)의 지도를 받는 러닝위드쥬디(감동님의 영어이름) 과기대 클래스가 있다. 또 권감독님의 애제자인 배우 고한민이 열심히 달리고 있다. 고배우는 고프로를 들고 뛰면서 달리기 이야기를 유튜브 고배우TV에 올린다. 고배우는 마라닉 액터스, RMM(Runners Maketh Man. Manners maketh man이란 속담에서 따온 듯) 팀의 멤버이기도 하다. 마라닉 액터스에는 진선규 배우도 있다. RMM에는 서브3(마라톤을 3시간 이내 주파), 빠른 서브 4를 하는 정말 괴물같은 실력자들만 있다. 노원구는 달리기가 정말 활발하다.
건강이 나빠지는 걸 느껴서 시작한 운동이 이제는 내 삶에서 없어서는 안 될 요소가 되었다.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도, 체중을 줄이는 것도, 차분한 마음을 갖게 하는 것도, 나를 돌아보게 하고 생각을 정리해주는 것도 다 달리기 덕이다. 달리기를 동적인 기도라 해도 좋겠다. 굽은 어깨와 구부정한 등처럼 몸에 안 좋은 자세도 많이 좋아졌다.
이제는 달리기를 통해 사람들을 만난다. 일과 교회를 중심으로 살아가던 삶이 더 윤택해졌다. 친구도, 동생들도 생기고, 형님도 생기고, 좋다. 달리기로 맺어져 결혼하는 커플도 여럿 보았다. 어젠 과음을 하긴 했지만, 대체로 술을 중심으로 모이는 게 아니다 보니 몸이 축날 일이 별로 없기도 하다. (아… 어젠 너무 즐겁게 마셨다. 그래서 술병에 들었다 ㅋㅋ)
2008년 나이키 서울 휴먼 레이스 10K를 처음으로 달려본 후, 작년에는 서울 레이스에서 하프마라톤을, 지난 주말에는 국내 1등 마라톤이랄 수있는 동아일보 서울 마라톤을 완주했다. 그리고 가을에 있을 JTBC 서울 마라톤에 참가 신청했다. 아직 서브4(4시간 이내 주파)는 아니지만, 나름 목표로 삼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대가가 없는 건 아니다. 썬크림을 싫어해서 안 발랐더니 이제 동안을 자랑할 수 없게 되었다. 무릎도 아팠고, 정강이, 발목도 아프다. 누군가는 그거 봐라, 달리면 무릎에 안 좋다는 둥, 활성산소가 많아져서 빨리 늙는다는 이야기를 하겠지… 사실 다치는 건 몸을 이해하지 못해서, 서툴러서 그런 것이다. 활성산소가 늘어나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만큼 몸이 활성산소에 저항성이 생기면서 되려 노화를 늦춰준다는 게 의학적으로도 확인되었다. 이렇게 말해봤자 달리기 싫어러들은 다른 이유를 기어코 찾아내겠지만, 대가보다 얻는 효익이 크기 때문에 난 달리기를 관둘 수 없다.
운동을 하면서 “나를 알아간다”는 것에는 나 자신이 몰랐던 나의 몸탐색도 포함된다. 나의 영혼을 담은 그릇같은 존재, 몸에 신경쓰다보면 내몸이 이렇구나, 내가 나의 몸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구나, 내 몸의 한계는 여기까지구나, 어? 한계를 이겨내고 더 좋아졌는데? 라는 것을 서서히 알아가게 된다. 이게 중요하다. 나에 대한 나의 무지를 알게 되는 것, 그래서 나를 더 알아내려 하다보면 자연스레 정신 건강도 신경 쓰게 된다.
달리기 부상은 정상적인 성장통인 경우도 있고, 욕심이 과해서 그런 것도 있고, 운동 방법을 몰라서 생기기도 한다. 나의 경우에는? 무릎이 아팠던 건 피트니스 센터에서 PT를 받으며 하체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사라졌다. 허벅지 앞근육만 발달하고 뒷쪽, 햄스트링이 약한 게 원인인 걸 알았다. 무릎이 많이 가벼워졌다. 정강이 부상은 지나치게 오버페이스로 달린 게 화근이었다. 너무 짧은 기간에 속도를 올리고, 거리도 늘린 게 문제였다. 이제는 안다. 달리기 거리를 늘리다보면 속도는 따라오고, 거리를 늘리려면 평소에 달렸던 최대 거리의 10% 이내에서 조금씩 늘려서 달려야 한다는 것을. 다행히도 철인경기가 취미인 정형외과의사를 알게 되어 과잉진료도 피할 수 있게 되었다.
나중에 딸래미가 남친 데리고 오면 함께 달리기를 할 것이다. “나를 이겨라. 그렇잖으면 난 반댈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