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지난 줄 모르게 슬쩍 사라진 2016년이건만, 2017년 1월이 끝을 향해 가고 있다는 이 느낌. 이제라도 뒤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네 시작은 iOS 앱이었으나, 네 나중은 PDF가 되리라
딱 작년 이 즈음, 13월의 보너스를 탈탈 털어 맥북 프로를 (리퍼로) 장만할 수 있는 행운이 생겼다. IT업계 종사한다지만, 프로그래밍의 P자도 모르는 나. 뭔가 새로운 커리어 패스를 쌓고 싶었다. 그렇게 도전한 iOS 프로그래밍…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 PDF 편집으로 끝났다.
참 안타까운게, 천주교는 (천주교 주교회의가 발행한) 성경, 성무일과, 매일미사 앱이 있는데, 대한성공회는 이런 앱들이 없다. 있으면 참 좋을텐데, 교세가 작아서 여력이 없다. 아쉬운 내가 만들어보기로 마음 먹고 시작했지만, 일과 육아를 모두 감당하기엔 저질 체력이라 제대로 진도를 뽑지 못했다. 그래서 대신 시작했던게 PDF로라도 공동번역 성서를 이쁘게 만들어보자는 것이었고, 나름 좋은 결과물을 만들었다.
대한성서공회가 공동번역 성서의 저작권을 갖고 있어서 공개 배포가 불가능하다는 아쉬움은 있으나, 개인적으로 쓰기엔 손색없다. 더불어 이전에 있던 성공회기도서, 성가 PDF 파일도 보기 편하게 북마크를 달아놨다.
올해엔, 다시 iOS 프로그래밍에 도전해볼 생각이지만, 자신은 없다. 나이가 '4'자로 시작하면서 여러모로 리소스가 부족하다.
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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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rosoft Word에서 패턴 매칭을 이용해 찾기 & 바꾸기 스킬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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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마다 "장"과 "절" 구분이 다르다는 걸 처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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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의 수요일과 부활절을 질의 할 수 있는 웹 API를 찾아냈다. iOS 프로그래밍할 때 써먹어야지…
마이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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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질 체력을 실감했다. 일과 육아를 하면서 자기 계발을 하기 힘들다. 그렇다고 육아를 잘 한 것도 아니라는.
사제회장…
낯선 자리, 사제회장. 다니는 대한성공회 송파교회에서, 운영위원회의 사제회장이 되었다. 성공회로 전입한지 올해로 6년차가 된다. 사제회장을 맡는게 가당키나 한 건지 모르겠다. 사제회장으로서, 신부님께 부담이 되지 않도록 살아야겠다. 신자회장과 함께 으쌰으쌰, 운영위원회와 함께 으쌰으쌰!
아제 아제 바라아제
그렇다. 이제 나도 아재 클래스라는 것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몸도 마음도. 이젠 젊은 친구들을 보면 이질감이 들고 부러울 지경이다. 회사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회사의 문화 차이도 한 몫을 할테지만, 안랩에서의 나, 시큐아이에서의 나는 전혀 다르다. 그땐 30대여서 그랬을까, 새로운 무엇에 호기심으로 도전하고, 간혹 자발적인 밤샘 근무를 하면서 의욕적으로 일했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다. 이제는 반드시 밤엔 자야 하며, 새로운 기술이나 흐름에 시들해졌다. 먹는만큼 허리 둘레도 늘기 마련이여서, 먹는 것도 조절해야 한다. 입을 열 때엔 꼰대가 아닌지 스스로 경계해야 한다.
신부님에게 40대는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기라는 말을 들었다. 틀리지 않다.
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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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다(좋은 점은 차차 알아가겠지)
마이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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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도 마음도, 조심할 것이 많아진다. 자기 관리에 소홀하면 팍팍 티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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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룬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꿰어야 보배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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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늦은 것일까?
회사에서 나는?
돌이켜보면, CC 인증이 내 커리어일 때에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가끔, 나를 이 바닥에 들여놓은 유넷 김모 이사님을 원망한다(어울림은 왜 CC 인증 포지션을 테크니컬 라이터라는 이름으로 포장했을까? 나는 왜 낚였을까? 그래도 어쩌겠나. 이 일덕에 풀칠하며 살고 있다. ㅋㅋ).
대학 졸업 후 거쳤던 회사들 중(지금까지 4개 회사를 다녔다)에, 보안 사고를 겪어보지 않은 회사가 없다. 사소하게는 사내에 Nimda 웜이 돌았던 일부터, 스피어 피싱을 이용한 정교한 타겟 공격에 이르까지 여러 사건을 목격했다. 걔중엔 PoC를 위한 장비의 디폴트 패스워드를 변경하지 않아 사이트가 해킹당한 사건, 시험망에 침입이 발생해 서버가 장악당하거나, 개발용 서버가 악성코드에 감염되어 ARP 스푸핑을 하던 사건도 있었다. 이런 사건들을 보거나 겪을 때마다 보안인식과 조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몸으로 깨닫는다.
2016년은 북한발 보안업체 공격이 꽤 많았다. 2016년은 몇몇 업체가 코드사인 인증서를 털리는 바람에KISA가, 그리고 금융권이 보안업체의 개발 환경 보안을 점검하거나 감사를 하는 일이 있었다. 2017년이 이제 20여일 지난 지금, 또 유사한 사건이 발생했다. 연거푸 터지는 이런 일들 때문에 개발환경의 보안을 강화하고 있다. CC 인증 외에, 이런 일들에서 맡아야 하는 역할이 있어서 작년도, 올해도 부담이 적지 않다. 어쨌든 마무리는 지어야지?
연구조직의 네트워크 관리자로서 혼자 업무를 담당했었다. 그러다가 정/부 체제로 접어들면서 부 관리자가 되었는데, 정 관리자와 부 관리자의 역할에 대해 서로 입장이 다르다. 안되겠다 싶어 그냥 정에게 일을 모두 넘기고 관여하지 않지만, 정/부 체제는 정말 불만이다.
한 편으론, CC 인증 업무에서 내 자리를 확고히 잡지 못했다는 생각도 든다. 내가 정말 회사에 필요한 사람일까?
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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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 인증 업무는 나름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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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 강화 업무가 나쁘지 않다.
마이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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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싫어진다. 매너리즘? 적성에 맞지 않음?
한가정의 구성원으로서
둘째를 돌보면서 첫째에게 진짜 준비된 아빠가 아니었다는 것을, 정말 준비되지 못한 남편이었다는 고백을 한다. 이제 둘째가 햇수로 세살인데, 부끄러운 고백이다. 살다보면 각자 잘하는 것을 찾아 제 자리를 찾아가기 마련인 것 같지만, 아직 가부장 사회인 한국에서 균형을 맞추어 육아를 할 수 있는 남편이 못되었다.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려고 칼퇴근을 하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그래서 할 수 있는 일이란 게 육아의 보조 역할에 머물고 있다.
그래도 다행이랄까, 첫째가 내 곁에서 자는게 싫지 않은가보다. 항상 엄마 옆에 붙어자더니 요즘은 아빠랑 같이 자주는 딸에게 고맙다. 잠자기 전에 함께 장난 치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아빠에게 정을 붙여주는구나! 둘째야 워낙 아빠 껌딱지니까…
이제 10년에 접어드는 나의 아내님을 나는 얼마나 잘 알고 있는 걸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어떻게 부양해야 하나하는 걱정만 하고 옆은 돌아보지 못한 것같아 반성. 같은 방향을 봐야하는데, 같은 방향을 보고 있나?
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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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가 같이 자주어서 고맙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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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칼퇴로 아이들과 놀 시간이 많아졌다.
마이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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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가사와 육아의 균형을 맞추려면 한참 멀었다.
기타…
40대에 덕질이란 잘 맞지 않는다. 이 분야에 종사하게 된 것도 나름 대학 전공 외 분야에 호기심으로 진출한 덕질이 원인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이 길에 들어서지 말았어야 했던 것아닐까 싶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참 가슴아프다.
2016년에 Python 문서 한글화에 참여했지만, 활동이 저조했다. 마음은 원하나, 여력이 없다. CC 인증 문서의 한글화를 시작했다. 꾸준히 해볼 생각이다. 하지만 언제건 내가 CC 인증 업계를 떠나게 된다면…
2016년은 한 편으로 하나의 문이 닫히고, 새 문이 열리는 해였다는 생각도 든다. (그게 내 또래 나이에 자연스러운 것인지 아닌지는 아직 모르지만) 인생을 달리 보아야 하는 시기, 살아가는 방법보다 삶의 의미에 천착하는 시기가 아닌가 싶다. 가끔 교회 신부님이 나더러 성직에 관심없냐고 떡밥을 던지시는데, 아직 낚일(?) 용기가 없다. 그럴 인성도 아닌 것같고…
2016년은 유난히 정치/경제적인 문제로 시끄러웠던 한 해이기도 했다. 이런 문제에 이 블로그에선 말을 아꼈다. 굳이 내가 아니어도, 여기저기서 이슈들을 이야기하고 있으니 굳이 나까지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싶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같다…
그래서 올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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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OS 프로그래밍에 다시 도전할 것이다. 성공회기도서를 앱으로 만드는 데 도전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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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공동번역 성서 개정판의 PDF 파일은 꾸준히 손질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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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 인증이 아닌 다른 길을 찾아보자. 내가 정말 하고 싶은게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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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래밍이 내 길이 아니라면, 로컬라이제이션이라도 잘 해보자. 오픈 소스 커뮤니티에 기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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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와 가사는 아내와 이야기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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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부 비만이다. 운동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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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업계 사람들 좀 만나고 생각을 교환하며 살자. 가정의 평화를 지킬 수 있는 선에서.